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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넷-성숙해져 돌아온 첫사랑 연인 3

고독사냥꾼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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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덤으로 할아버지와 부모님들이 압력을 넣지 않고 기다렸다가 수경이란 여자와 결혼을 하게 하였다면 이미 손자를 안아 볼 수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 또 하나의 주장이었다. 

어머니도 49제 운운 하는 말에는 이유를 달고 토를 달았지만 수경이란 여자와 결혼을 하게 하였다면 이미 손자를 안아 볼 수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말에는 입을 열지 못 하고 말았기에 난 재혼의 압력을 피할 수가 있었다. 

작년으로 치면 7년 전에 결혼을 하였으나 아지 35살의 창창한 나이이고 올해는 36살이지만 총각장가를 갈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가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36살이지만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재벌은 아니지만 유망 중소기업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아내가 죽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처녀들을 딸로 둔 보모로부터 종매가 마구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음해 아내의 첫 기제사를 집에서 지내고 아내의 제사를 절로 보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재혼을 하라는 엄마의 말에 따라 선을 봤다. 그러나 나와 맞선을 본 여자들은 하나같이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 그런 여자들뿐이었다. 죽은 아내를 새삼 생각이 나게 만들기에 충분한 여자들뿐이었다. 아내의 기제사를 지내고 한 달 동안에 본 맞선만도 하루에 한 번이 넘게 봤다. 주말의 경우 보통 2번 넘게 본 경우도 있었다. 


작년 년 말 2주 전 어머니가 나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던지 마음 착하고 여린 여자라는데 흠이라면 결혼을 하였다가 이혼을 한 여자인데 나이는 내가 선을 보 여자들이 비하여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닌 28살인 여자가 있다는데 한 번 만나겠냐고 넌지시 물었고 마음 착하고 여린 여자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초혼 재혼 불문하고 만나보겠다고 하였고 그리고 만난 것이 바로 나의 첫사랑인 수경이였던 것이다. 

“이혼했다면 왜?”난 수경이가 이혼을 한 이유가 궁금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을 직장생활 하다가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란 사람이......”하고 말을 흐렸다. 

“그래 남편이란 사람이 왜?”하고 묻자 

“신혼초야에......”얼굴을 붉히며 겨우 말하였다. 

“!”속이 뜨끔하였다. 

수경이 처녀를 내가 먹었기 때문이었다. 

“죄스럽게 생각 말아요 아저씨 잘 못을 없었잖아요”하며 웃었다. 

“그렇다고 제가 싫다고 하는 아저씨에게 억지로 처녀를 드리고 다른 남자를 품에 안으며 마구 놀았다면 그 사람 입장도 이해는 하겠어요, 하지만 아저씨와 그런 일이 있고 그 남자와 결혼을 하기까지 단 한 명의 남자에게도 몸을 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신혼초야에 티가 안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의심하기 시작하더니 시장만 다녀와도 어떤 놈이랑 붙어먹다 왔느냐고 트집을 잡더니 이혼을 할 무렵에는 손찌검은 보통이고 심지어 가죽혁대로 저를 마구 때리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혼을 하였어요. 아저씬 왜?”수경이는 자신이 이혼을 하게 된 것이 분명히 나라는 인간에게 처녀를 줘서 생긴 일임에도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나를 두둔하였다. 

그러자 난 나의 지난 이야기를 아주 간결하고 알아듣기 쉽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어머머 안 됐다 아저씨도 불쌍하고.....”수경이는 죽은 마누라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하였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수경이 얼굴만 보고 있었다. 

“어머 아지 저 모텔이 그대로 있네.”하며 먼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난 얼어붙은 듯이 수경이 얼굴을 볼 뿐이었다. 

수경이가 가리킨 곳을 바로 수경이가 회를 사 달라고 하여 갔던 곳에서 돌아오다가 자기의 처녀성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바친 그 모텔이었다. 

“아저씨 제 말이 맞았죠? 그때 제가 한 말 기억나세요?”하고 물었다. 

“글쎄 무슨 말을 했었지?”가물가물한 기억이라 생각이 언뜻 나지 않기에 묻자 

“호호호 제가 나중에 후회하기 싫다며 아저씨에게 절 가지라고 한 말 기억 안 나세요?”하고 웃으며 묻더니 차를 그 모텔 주차장 그도 정확하게 내가 차를 파킹하였던 그 자리에 파킹을 시키며 물었다. 

“아~맞다. 수경이가 그런 말을 했었지”하며 웃자 

“지금 저를 안아주시고 그냥 가라고 해도 후회 안 할게요 안아 주실래요?”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아니 나와 함께 평생을 해 준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싫어”하고 말하며 보듬자 

“아~아저씨 이게 꿈은 아니죠?”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제 함께 살면서도 아저씨라고 부르겠니?”난 눈물이 맺힌 수경이 볼을 가볍게 꼬집고 흔들며 물었다. 

“그럼 여보 아~몰라요 자기야 나 안아 줘 예전처럼”하며 나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텔 안으로 들어가 재회의 회포를 원 없이 풀었는데 그녀의 말처럼 이혼을 한 남편하고는 잠자리를 한 것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말처럼 예전에 처음 처녀막을 관통하였을 때나 다름이 없는 그 느낌 그대로였다. 


그 길로 난 수경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은 내가 맞선을 본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수경이는 우리 부모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러자 우리 부모님은 더욱더 놀라며 맞절을 하려 들었으나 내가 제지하며 그대로 받으라고 부탁하자 마지 못 해 받았다. 부모님에게 수경이와의 관계를 말하자 아버지는 몰랐지만 엄마는 놀라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바로 이 여자가 그 수경이라고 하자 엄마는 수경이 손을 잡고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자기의 잘 못으로 이제야 부부가 되겠다면 좋아하셨다. 아버지도 그때서야 전말이 이해가 되었던지 빨리 식을 올리라고 재촉을 하였고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릴 수가 없다는 수경이를 어머니와 내가 설득을 하여 양가의 일가친척과 친한 친구들만 부른 자리에서 작년 1월 1일에 간단하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함으로서 우리들의 제 2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올 1월에 수경이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할아버지가 그렇게 기다리던 손자를 안겨드렸다. 성숙하여져 돌아온 나의 첫사랑 수경이를 정식 아내로 맞이한 그녀가 말이다. 아마 하늘나라에 있는 죽은 아내도 우리의 결혼식을 축복을 해 줄 것이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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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께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으나 필자가 기독교라고 하면 진저리를 낼 정도로 싫어하기에 년 말 특집이란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맨 꼭대기에 기독교가 가정 성행하는 나라인 미국에서의 교회에도 십자가 대신에 별 모양이나 종을 다는데 이인 셈인지 우리나라는 시청이나 도청 앞 광장에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에도 십자가를 버젓이 달아두었더군요. 

우리나라의 국교가 기독교인가요? 

몇 년 사이 크리스마스에 미국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 및 문구가 <해피 할러데이스(Happy Holidays)>나 <시즌스 그리팅(Season's Greeting)>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고 또 실제로 미국 대부분의 백화점과 상점에서도 기독교인이 아닌 구매자들을 고려해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용어 사용을 피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 좀 별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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